최 종 봉소령1926. 11. 20 ~ 1951. 4. 16
‘작은 거인’ 전폭기 몰고 적군의 진지로
- 작은 키로 등받이 대고 전투기 조종, 불리한 조건 이겨내
- 적군 주요 연료·보급품 저장소 폭격
1951년 4월 16일 오전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최종봉 대위는 등반이를 챙겼다. 강원도 평강·이천 지구에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한 작전을 위해 F-51 전폭기에 올랐다. 작은 키 때문에 조종석을 향할 땐 항상 한 손에는 등받이가 들려있었다.
다부진 인상에 과묵한 표정이었다. 최 대위를 태운 전투기 엔진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10번째 출격이었다. 등받이를 대고 자리를 고쳐 앉은 최 대위가 동료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사실 최 대위는 L-4 연락기를 조정했었다. F-51 전폭기로 기종을 전환하면서 훈련 당시 '우수 조종사'로 뽑히기도 했다. 불리한 신체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였다.
이미 최 대위는 북한군의 연료 저장소 2곳과 보급품을 실은 차량 35대 등을 부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과 치열한 싸움을 하는 한국군에 보급품을 전해주는 것도 그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보급품을 챙기는 역할은 모두가 귀찮아했던 일이었지만, 최 대위는 불평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 대위는 이날 편대를 이끌고 경기도 이천 북방 상공을 누비며 북한군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당시 공중에 있는 표적을 향해 사격하는 북한군 대공포는 전쟁터에서 가장 위협적인 장비였는데, 이날 만큼은 최 대위도 대공포화를 피하지 못했다. 대공포화에 맞은 그의 전폭기가 중심을 잃었다. 그는 북한군의 더 깊은 진지로 빠르게 전투기를 몰았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최종봉 공군 소령은 경북 청도군 무수동 출신이다. 청도공립고등소학교(현. 청도초등학교)를 마친 뒤 일본 육군비행학교에 다녔다. 23세 때 육군항공사령부 조종하사관으로 들어가 다음 해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공군비행단 대위로 L-4 연락기를 몰았다. 모두 60차례에 걸쳐 북한군의 진지를 탐색하고 지휘관을 수송하는 등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전쟁발발 당시 전투기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우리 공군의 열악함을 감안할 때 연락기로 적 지상군에 대한 공격 임무를 수행한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