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근 석장군1917. 1. 17 ~ 1950. 7. 4
우리나라 최초 전투기 편대장 ‘잿빛 하늘에 꽃으로 타오르다’
- 비행 중 피격 ··· 적군 속으로 그대로 돌진
- 33세 나이에 장렬히 산화 ··· 첫 전투기 조종사 전사자
1950년 6월 28일, 거칠 것 없이 남진하는 적의 T-34 탱크를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하고있는 경비행기로는 도저히 파괴할 수 없게 되자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10대의 F-51 무스탕기를 대한민국 공군에 제공하기로 결정하였고, 이근석 대령은 미군이 지원해준 F-51 전투기를 대구기지로 몰고 오는 인수편대장을 맡았다.
1950년 7월 4일 이근석 대령은 미 극동공군사령부로부터 제공받은 무스탕기 편대의 편대장이 되어 처음 출격에 나섰다. 지상에서는 편대의 장도를 기원하는 기지 장병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편대와 더불어 기지 상공을 서서히 선회하여 장병들에게 답례한 그는 북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 장군이 급강하해 적군에게 로켓탄을 발사하고 기수를 올리던 순간, 적의 대공포에 이 장군의 전투기가 맞았다. 그러나 그는 침착했다. 한 번 더 적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왼쪽 끝부분에 있는 적군의 탄약 차량이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3번기 도로 좌방 탄약 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 이 마지막 명령을 끝으로, 그는 적군의 전차에 그대로 돌진했다.
33세의 나이로 이 장군은 이렇게 전투기와 함께 산화하였고, 첫 전투기 조종사 전사자로 기록됐다. 이 장군에겐 공군 최초로 태극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평안남도 평원 출신인 이 장군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7세가 되던 1934년 일본 구마가야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웠다. 담당 교관이 '비행술의 천재'라 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광복 후 한국 땅을 밟았을 땐 공군 창설에 힘을 쏟았다.
대구 공군기지(제11전투비행단)는 북한군 차량에 돌격하여 산화한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 이근석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7월 4일을 기하여 추모식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