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호국영웅

  1. 호국영웅
  2. 호국영웅

도 대 철중위1928. 2. 17 ~ 1951. 11. 17

적군의 진지 그린 지도만 건네고 혼자 적진으로...

  • 화기진지 수 위치 그려 대원에게 전달
  • ‘12시간의 도하작전' 949고지전투 대승리 주역
1951년 11월 17일 새벽 6시.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949고지 주변 강가. 제6사단 제7연대 도대철 소위는 뼛속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강에 들어가 있었다. 강물 위로 내민 얼굴에는 추위 때문에 코끝까지 빨개져 있었다. "우리의 정찰 결과에 따라 연대 도하 작전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 수많은 전우들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려있다. 정확히 정찰해야 한다. 살아 돌아올 생각은 이 순간부터 버려라!" 도 소위는 수색조로 지원한 5명의 대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휴전 회담을 앞두고 다뤄질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비하여 가능한 한 전선을 북쪽으로 밀어올려놔야했다.

도 소위는 새벽 어둠을 뚫고 강을 건너갔다. 희미한 시야 속에 강둑을 따라 설치해둔 중공군의 화기 진지가 보였다. 그는 화기 진지와 강둑 너머 진지를 더 살펴보기 위해 두 명의 대원만 남겨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선적으로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도 소위는 예상보다 견고하고 치밀한 화기 진지에 놀랐다. 표적을 정해 쏘아대는 자동화기 진지만도 4~5개나 됐다. 모두 강둑의 진흙을 파내고 콘크리트로 다진 방어벽이었다. 그는 적의 화기진지를 그린 지도를 대원들에게 주고 연대본부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도 소위는 더 고개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혼자 깊숙이 적의 진지에 들어갔다. 지도를 받은 대원들이 본 도 소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30분 뒤 적의 진지에선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23세 청년은 이렇게 정찰 임무를 완수해내고 목숨을 잃었다.

강둑 너머로 총성이 들리자, 한국군은 중공군의 화망과 자동화기 진지에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고요한 강이 한순간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12시간 동안 벌어진 도하 작전은 949고지 전투를 대승리로 이끌었다. 1952년 5월 정부는 도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육군 중위 계급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도대철 육군 중위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살다 일본으로 건너가 항공통신학교를 마쳤다. 6·25전쟁이 나자 통신 11기 간부후보생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전쟁 초기인 1950년 6월 25일부터 5일 동안 북한군과 싸운 강원도 춘천 방어전투를 비롯해 낙동강 방어 전투, 인천 상륙작전, 북진 작전 등에 참전했다. 그는 겸손했지만 싸울 때는 용감하게 나섰다. 모든 전투에서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행동은 사단장에게 깊은 신뢰를 얻었다.

강원도 양구군은 6·25전쟁에서 치열한 격전지였다. 강원 양구전쟁기념관에는 949고지 전투 등 9개 전투에 대한 기념비가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