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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1. 호국영웅
  2. 호국영웅

이 일 영중위1928. 8. 26 ~ 1952. 1. 9

기체를 적진으로 돌진, 살신성인 실천한 영웅

  • 한국전 영천 방어에 결정적 공 세워
  • 북한군에 격추되자 대공포 벙커로 전폭기 내리꽂아
'창공을 날아오른 젊은 기상/ 나라 위해 장렬한 날개 접으니/ 산화한 붉은 충절/(중략)/장할 손 그 모습 높이 세우나니/ 한 떨기 충절의 꽃/ 고 이일영 중위님 여기 편히 쉬소서'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 있는 이일영 공군 중위의 흉상 아래 새겨진 추모시다. 공군 전투복을 입고 있는 이 중위의 흉상은 늠름하고 위용이 넘친다. 예안이씨 종친회와 안동시민들이 한국전쟁 중에 전사한 이일영 중위를 기리기 위해 2001년 그의 고향인 이곳에 흉상과 추모비를 세웠다. 해마다 대한민국의 안녕과 번영, 하늘을 지켜달라는 추모제를 지낸다.

1952년 1월 9일 아침 7시, 당시 이일영 소위는 F-51 전폭기를 타고 강원도 바로 위쪽에 있는 원산 지구로 향했다. 이 주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북한군의 전쟁물자 수송지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43번째 출격이었다. 이 소위가 소속된 제1전투비행단은 금성군 창도리 상공에서 북한군의 보선 철도와 대공포 진지를 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위의 전폭기 엔진이 북한군의 대공포에 맞아 부서졌다. 이 소위는 탈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군의 대공포 벙커로 전폭기를 내리꽂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전투기와 함께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나이 24세였다.

이일영 공군 중위는 경북 안동시 예안면 한 가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42년 3월 안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 일본 소년비행병학교에 입학했다. 20세 되던 1948년 9월 육군 항공과에 입대하여 다음해 공군 창설과 함께 조종사로 활약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대한민국의 최초 항공기였던 L-4 연락기로 북한군을 정찰하고 연락 비행, 전단 살포 등의 임무를 맡았다. L-4기는 속력이 느리고 기체가 보잘 것 없어 저공비행을 하면 북한군에게 그대로 노출됐다. 하지만 그의 조종실력은 빛을 발했다. 특히 1950년 9월에는 경상도 대구와 영천 지구 주변에 숨어있던 북한군 200여 명을 찾아내 무찔렀으며, 한국군 진지로 몰래 이동 중이던 북한군 300여 명을 발견하는 등 영천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정부는 이러한 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안동시는 6·25전쟁 65주년을 맞은 2015년, 이 중위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에 '이일영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가까이서 이 중위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